文:川上典李子

'Made In Japan'에 담은 생각

와다  GreenFan S의 제조 장소를 일본으로 정한 것은 테라오씨의 결단이었지요.

테라오  기존 제품들은 해외에서 제조해왔습니다만, GreenFan S는 야마가타현의 요네자와시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 제조 현장에서는 품질뿐만 아니라 신속함도 중요하지만, 특히 계절상품은 고객의 수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승부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생산함으로써 리드 타임(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빠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품질은 당연히 높아졌고, 그에 따라 엔지니어를 다음 제품 개발에 밀접하게 투입하는 등 인건비가 올라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한 메리트가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와다  의욕이 넘치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동기부여를 중요시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경제 체제를 재편해야 하는 시대의 하나의 사례 연구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라오  '일본은 당면한 과제에 적극적으로 마주하여 해결해 나간다' 과거의 고도 경제 성장도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실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만, 시대가 변한 오늘날, 일본은 당시와는 또 다른 형태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를 조작하는 조종사의 실력에 관해서도 꼼꼼함과 가능성을 요네자와에서 실감했습니다. 물건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몸에서 뿜어지는 기력이 해외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 제안도 종종 하고 말이죠.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 성과가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와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해외 제조를 한다 라는 발상이 아닌, '현장의 패기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도전이기도 하지요. 이것은 'GreenFan S'의 새로운 의미와 제조업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외에 대한 공헌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품질로 선도해가며 개선해야 할 부분도 고쳐가고 있습니다. 성공시키고 싶고, 또 모두가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과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올해의 제품 판매는 해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더욱 증가할 것 같네요.

테라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에서의 판매 비율이 전체의 3할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는 인테리어 쪽에서 유명한 편집샵 '매거진'에서도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서의 락밴드입니다

와다  이처럼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 역시 음악과 같습니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스타일링'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현재에는, '디자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보다 다른 표현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현 상황에 대한 이러한 반문은 앞으로의 비즈니스에서도 나타날 것이고, 나아가서는 그런 자세가 젊은 세대에게도 전달되는 것은 아닐까요. 공감 되는, 그리고 함께 성장해 가고 싶다고 생각되는 기업인 것입니다.

테라오  지금까지의 제조업체는 '기계'를 팔아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들 발뮤다의 철학은,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두근거림, 떨림과 같은 감동, '좋구만!' 이라고 느껴지는 경험을 판매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와다  그러한 팀을 '회사'라는 말로 묶고 싶지 않았고, 새로운 시대의, 그렇네요. 역시 '락밴드'라고 해야겠네요. 그리고 테라오씨의 팀은 '센스', 즉 감성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지요.

테라오  와다씨가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내용이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가치관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실감해 왔습니다. 어떠한 기준이 되는 가치관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죠. 거기에 찬성해 주시는 분들이 제품을 구입하고 평가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만드는 돌파구

와다  아우디가 지금처럼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말하기까지 25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테라오  25년이나 말입니까!

와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지위가 곧 상징이었던 사회 프로그램이 무너지자 과거의 비주류들이 였던 것들이 메이저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락가수같은 사고방식이지요. 애플도 마찬가지로, IBM의 제품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가 석권하고 있던 세상을 조그만한 회사로 뒤흔들었습니다. 시대의 전환점에서 테이블의 위 아래가 뒤집히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뮤다를 여러분 모두가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발뮤다와 같은 돌파구 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없으니까요. 

테라오  와다씨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쁘네요. 

와다  저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새로운 디자인을 고안할 때마다 꽃의 모습에 주목했던 시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물건이 생활을 좋게 만든다고 믿어졌던 시대, 자동차는 그 대명사이며, 디자이너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활동해온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이야기로, 자동차에 관해서도 다양한 가치를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테라오  와다씨와 제품 개발을 해오면서,  와다씨가 경험해왔던 지식, 판단의 기준을 얼마나 우리들이 계승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그 철학과 활동 자체가 그야말로 문화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존 레논의 노래에 감격한 사람이 다른 스타일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모든 것에서 묻어나오는 제작자의 인간성

와다  저희들은 될 수 있는 한 겸허히, 사람들이 만들어 왔던 것과 과거의 시련을 받아들여가며 미래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만해지지 않고, 실수를 하지 않는 마음가짐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란 그러한 인식에 맡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라오  마음이 전부 드러나는 것이군요. 제작자의 인간성이 중요해지는 것이지요. 

와다  그리고, 일본의 제조업과 디자인에서 결핍되어 있는 것은 '개(個)'의 단위입니다. 개인에 대한 존경 없이, 중요한 생각의 공유와 팀워크는 성립하지 않을테지요. 발뮤다에서는 이러한 개인이 있고 그 위에 '밴드'가 성립해 있습니다. 멤버가 밴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만과는 다른 자기 자신이 있고 그리고 그 위에 각오와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테라오  저의 일은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의 연속입니다만, 와다씨가 말하는 센스는 자연적으로 선택되는 것인가? 라는 자문자답을 아직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게되면,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중요해지지요.

와다  일본의 가전제품을 만들어 왔던 지금까지의 그 어떤 기업과도 다릅니다. 발뮤다는 언젠가 그 대단한 아우디를 뛰어넘을 지도 모릅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테라오  와다씨가 이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영광이구요, 책임감이 느껴지네요. 이 2년간, 저희들은 디자인이란 '형태'가 아니라 '사고 방식'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디자인에 국한된 이야기만이 아니라, 제품 개발과 커뮤니케이션, 애당초 어떠한 제품을 세상에 내보낼 것인가에 대한 발상의 단계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제품이 제공해야하는 것은 성능이 아니라 '좋음'. 하지만 어떠한 '좋음'일 것인가 입니다. 단순히,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좋음'이라고 상상하고 있습니다만, 그 '목표로 하는 좋음' 자체를 각자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참으로 인생을 바치기에 어울리는 탐구라고 생각합니다.

 

- 마침 -



Satoshi Wada

1961년 도쿄 출생, 무사시노 미술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1984년 닛산에 합류하여 1998년 아우디 AG/아우디 디자인으로 이적하였습니다. 아우디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싱글 프레임 그릴을 디자인했으며, A6, Q7, A5 등 주요 차종을 담당. 아우디 브랜드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2009년 아우디에서 독립하여 'Swdesign'을 설립 하였으며, 독립 후에는 자동차 디자인과 독일에서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시대의 미니멀한 가치와 생활'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2012년 ISSEY MIYAKE WATCH 'W'를 발표했습니다.



Gen Terao

1973년 출생, 17살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였습니다.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 등 지중해를 따라서 방랑 여행을 합니다. 귀국 후 음악 활동을 하며 대형 레이블과의 계약과 또 파기되는 등의 경험을 거칩니다.  2001년 밴드 해체 후 제품을 만드는 길을 택합니다. 독학으로 공장에서 설계, 생산을 습득하고 2003년 유한회사 발뮤다 디자인을 설립합니다. (2011년 4월 발뮤다 주식회사로 사명 변경) 현 발뮤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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